보통사람, 그리고 디자인
01.
저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평균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길을 걷다가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출퇴근길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혹은 번잡한 길을 걷다 보면 길거리의 가로수나 바닥의 보도블럭과 같이 흔하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외모의, 어찌 보면 만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고만고만한 키와 몸무게를 가진 30대의 서울에 사는 사람입니다.
대개의 어린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히는 특정 기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렬하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무자비한 호기심은 부모님을 지치게 했을게 확실합니다. 아마도 육아난이도가 상당히 높았을 겁니다.
다들 한번 쯤 겪는 이 시절을 지나면 대부분의 아동들은 그 호기심을 해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방법을 깨우치거나 호기심을 가라앉히는 법을 배웁니다. 남다를 것 없는 제가 다른 또래 아이들과 달랐던 점을 굳이 한 가지를 꼽는다면 그 자비 없는 호기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심지어 현재까지.
저는 직접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 이를 테면 그림을 그리거나 모래성을 쌓는 놀이처럼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꽤 좋아했습니다. 부모님들의 워너비 아동인 실내에서의 얌전한 -이를 테면 조용해 앉아서 책을 읽는 등의- 활동을 하는 성향은 전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말 안듣는 사내아이의 전형처럼 좀 더 거칠고 충동적인 야외활동을 훨씬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제 미래의 직업은 항상 뭔가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자동차 엔지니어이셨던 아버지와 교회의 플로리스트이자 뜨개질의 달인이신 어머니의 영향도 없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활동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가정형편은 꽤 어려워서 안타깝게도 미술학원 같은 곳에서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바뀐 것 같진 않지만 미술학원은 그 당시에도 꽤 비싼 비용이 요구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아직도 '미술학원'이란 곳은, 조용하고 공부도 잘하고 가정환경도 좋은데 인기까지 많은, 안경을 쓴,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흰색 피부의 여학생들이 많은 장소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 제가 학창 시절에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황당하게도 수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학을 잘하거나 좋아한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수학 교과서나 시험지에는 문제풀이용 빈칸이 많아 낙서할 공간이 넉넉했거든요. 수업시간에는 거의 대부분을 연습장이나 교과서의 여백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이 많았지만 저녁에 충분히 자던 생활을 하는 덕에 수업시간에는 늘 깨어 낙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은 제가 열심히 교과 필기를 하는 줄 알았겠죠. 가끔은 무슨 생각에선지 책상 위에 낙서를 하고 칼로 파내어 판화처럼 만들다가 선생님들에게 엄청나게 혼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뭐든 선을 넘어선 안됩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처음으로 진로에 대해서 조금은 깊게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잘하는 건 없지만 그나마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방향은 디자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단순히 그림과 연관 있는 직업이겠거니 했겠죠.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그 당시 유망직업이기도 했구요.
그 때만 해도 디자인이란 걸 배우려면 공업고등학교의 디자인과에 진학하거나 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달리(?) 꽤 소신이 없던 저는 부모님의 만류에 힘입어(??) 별로 내키지도 않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강제 진학을 해야만 했습니다(어쩌면 이때 효도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보통사람을 위한 디자인 안내서
디자인 문의 : botton.sal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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