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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을 위한 디자인 안내서

보통사람, 그리고 디자인 02.

by Botton.Salam 2020. 8. 10.

보통사람, 그리고 디자인

02.

 

 

  고등학교 진학 이전의 저는 이러한 상황 때문에 여기저기에 꽤 다양한 불만들이 있던 청소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진학에 대한 결정을 하며 갖게 된 입시 중심의 교육체계를 향한 불만은 지금으로서도 꽤 당위성이 있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불만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상업고, 공업고, 인문고로 나눠놓고 대학은 왜 인문고에서만 갈 수 있게 만들었냐? 동등한 비율로 진학의 기회를 줘야 하고 교육의 수준도 비슷해야 하는 거 아니냐? 어떤 것을 전문으로 배우느냐의 선택인데 왜 공업고 진학을 하면 대학을 못 가는 건데??"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에는 인문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학교군에 대한 선입견이 꽤 많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도 썩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또래 부모님 세대가 다 그렇듯이 자식이 좋은 대학 나오는 것을 거의 지상 과제처럼 여기는 풍토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걸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저는 그것이 큰 불만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저는 특별히 눈에 띄는 모범생도 아니었고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의 내용이 쌓여갈 수록 저의 무료함과 지루함은 N제곱 배로 쌓여갔습니다. 거의 매 수업시간에는 다른 책을 읽거나 몰래 그림을 그리는 둥 학업 외 다른 것에만 집중하곤 했습니다(아마 이 시절에 책을 꽤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림 그리면서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고급 스킬도 완전하게 연마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절이 얼마나 재미 없었으면 그 당시의 기억은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는 별로 남아있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어느덧 3년이 지나 수능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1년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신학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부모님의 영향이 대학 진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학이란 곳을 갈 성적은 아니었지만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할 것 같으니 또래들이 으레 하는 것처럼 점수에 맞는 대학교로 진학한 겁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 이때부터 한국에 대학교가 넘쳐나기 시작해서 등록금을 낼 수만 있다면 맘먹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졸업장은 얻을 수 있는 이상한 시스템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 반으로 정신없이 다니던 대학생활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나름 책임감을 가지고 다니려고 노력해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틈틈이 짜임새 있는(?) 휴학을 많이 한 탓에 서른 살이 거의 다 되어서야 간신히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 맘때쯤의 졸업이 보편적이기도 하고 대학원도 많이 가는 추세이지만 그땐 또래에 비해 많이 늦은 편 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으로 모든 게 마무리인 듯했지만 본격적인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바로 취직이라는 거대 그림자가 눈앞에서 새까만 손을 흔들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취직은 해야 했으니 지원할 만한 곳을 찾는 족족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꾸역꾸역 채워 넣어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그중 두어 곳에서는 인턴생활을 하기도 하였지만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과는 딱히 상관없는 업무들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전공과도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진 01] '보통사람'이란 말은 줄리아로버츠 정도는 되야 멋지게 쓸 수 있는 말일지도... / 사진 클릭

 

  이 때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괴리감과 소위 말하는 '현타'가 심하게 왔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본 경험은 많았지만 정식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제 온몸의 신경세포의 반응은 그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그런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환경에 적응을 하거나 가지고 있던 욕심의 일부분은 포기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월급도 적을뿐더러 참을성도 부족한 데다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무료함'을 참고 버티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았나 봅니다. 결국 저는 어느 한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폭발해버린 뒤, 하고 있던 모든 것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심지어 어떤 곳에선 잘리기도 했습니다). 일을 했던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높은 급여 수준을 봐서라도 참아야 하는 상황은 더더욱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이런 일을 한다는 건 정신과 시간을 갉아먹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뭔가 인생이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사는 대로 생각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생에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약간의 생각할 시간은 필요했지만 다른 선택은 딱히 할 게 없었으므로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그다지 큰 고민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속으로는 어릴 때 하지 못했던 속 깊은 아쉬움 같은 것도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모르게 내심 ‘디자인 같은 일'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다시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상했던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본 부모님께선 다행히 아무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이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만 남았습니다.

 

  우선 여전히 막막하긴 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리고, 만들기'라는 카테고리에서 일을 찾아봤습니다. 모든 머리카락을 더듬이처럼 사용하듯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니 목공방이라는 분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구를 그리고, 만든다. 저와 잘 맞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처음은 무작정 작은 목공방에 기술직으로 취직하면서 평소에 좋아하던 커다란 물건이나 가구를 만들며 기술을 배워봤습니다. 그다음엔 몇몇 교육기관을 통해 기술과 가구 디자인을 배우며 디자인업계로 점차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교육이 끝난 뒤 처음 취직한 곳은 소규모 공간을 디자인하는 작은 공간 디자인 회사였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디자이너’라는 명함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능력은 형편없었지만 제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디자이너’라는 호칭을 드디어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금은 그런 고집으로 돌고 돌아 이렇게 디자인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사람을 위한 디자인 안내서

브랜딩 / 공간 디자인 문의 : botton.salam@gmail.com


* 필자가 좋아하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 | Ambroise Paul Toussaint Jules Valery / 1871년 10월 30일 - 1945년 7월 20일)의 명언을 인용.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원문 : "Vous devez vivre comme vous pensez sinon vous penseriez comme vous viv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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